크리소스톰 설교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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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설교, 세싱속의 선교 - 박희춘소장 (연재)
박희춘 목사  (Homepage) 2018-01-04 03:57:08, 조회 : 3,713, 추천 : 740

1. 세상속의 설교, 세상속의 선교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교회안에서만 설교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안의 강단위에서만 우리는 설교할수 있다고, 설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육신의 기독론을 생각하면서, 높고 높은 곳에서
낮고 낮은 곳, 하늘나라에 머물지않고
낯설고 어둡고 위험하고 죄가 가득한 이 땅, 이 세상으로
내려오셔서 이 땅을 밟으며 이 땅속에서 33년의 삶을 몸으로 사신 예수님

세상속에서 몸으로 설교하시고
세상속에서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선교하신 예수님
우리는 그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울타리에, 안락한 울타리안에 머물지 않고
울타리를 뚫고 밖으로,ㅡ교회밖으로
세상속으로 나가, 세상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참으로 가까이 다가가신 예수님

우리는 그 예수님을 본받아야합니다.

2018.1.3

(세상속의 설교, 세상속의 선교라는 제목으로 계속해서 다양하게 연재하려고 합니다.
바쁘고 피곤한 병원선교 사역과 함께 시산과 틈을 내어 글을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설교학,선교학, 조직신학의 기독론, 기독교 문화의 관점에서 복합적인 관점으로
쓰려고 합니다. 저의 삶과 배움에서 몸으로 ㅆ려고 합니다.

신학을 공부하고서 목회자가 되고서도 전통적인 교회의 사역을 하지못하는
괴로움으로 고민하는 동료 목회자들을 위한 조언으로도 역할을 할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한후 더이상 세상속으로 거친 설교와 거친 선교를 중단하고
교회가 제도화가되어 안정과ㅡ안락에 머물면서
성장 후퇴로
세상과 단절되고
교회울타리안에서만 설교하고 선교하는 제도화되는 교회를 향한 도전으로도
한 외침이 될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신학자로서 신학교 교수로서 목회자로서, 선교사로서
항상 새 일을 창조하시는 주님의 창조의 영을 따라
우리는 우리의 사역의 영역을 무한히 넓힐수 있음을 경험해왔습니다.

한 교회의 목회자리를 위해 수백명의 목회자들이 이력서를 내고
시야를 오직 교회안의 설교와 교회화한 선교의 제도권에 묶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을 수정하는 한 작은 외침입니다.)

2.사도바울의 자비량선교

신약성서의 거의 절반이상을 기록한 위대한 선교의 사도 바울은 오늘날 우이릐 선교사의 모습과
우리 목회자의 모습과 달랐습니다. 사도바울은 세상속에서의 선교사였고 세상속에서 설교하였습니다.
Tent-maker 오늘날 선교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선교의 한 형태를 사도바울은 직접 몸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아무도 가지않은 곳, 그곳에서 부르는 음성을 듣는 선교사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하지만 동시에
울부짖는 영혼들의 소리도 들어야합니다.

어디선가 가슴아프게 들려오는 "와서 나를 도와주시요" 라는 울부짖는 영혼들의 소리를 들어야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저마다 다른 선교의 열정이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나라와 민족을 향한 독특한 선교의
사명이 있습니다.ㅡ그것은 바뀌기도합니다. 그러나 매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함과 동시에
어디선가나에게만 들려오는 영혼들의 음성을 들을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Calling에 응답할수 있어야합니다.
바울은 교회의 후원을 받기도 하였지만 스스로도 일을 하면서 자신의 선교사역을 지탱해나갔습니다.

세밀하게 본다면 오늘날의 특수선교와 다른점도 있지만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독립적으로 선교와 설교를 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병원선교를 예를 들면 의사나 간호사로 의료인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사랑으로 선교하고 설교하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목회자로 선교하고 설교하는 사역자들도 있습니다. 의료인으로서가 아니고 종교적, 상담적 사역을 병원에서 하면서 교회의 재정적 후원을 받는 사역자들입니다. 이 둘다를 동시에 실천하는 사역자들도 있습니다.

교회안에서의 사역이 가능하지않다고 주저않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의심하고 좌절하는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럴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은사를 잘 주시하고 자신의 열정의 선교와 셜교의 대상을 찾아 필요하다면 시간을 투자하여 교육을 받고 자격을 획득하여 전혀 예상외의 길, 나만이 걸어야하는 사역의 길을 찾아나섭시요.
교회의 후원이 전혀없을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비량의 길을 찾아야하고, 누구도 가지않는 주님과 영혼들만이 부르는 소명의 길이기에 외로울수도 가끔은 흔들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살아계시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혼들은 간절히 우리를 기다리기에 세상속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말없는 설교와 선교, 그러나 사랑으로 하는 섬김으로 하는 몸의 설교와 몸의 선교는 더 위대할수 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않아도.

2018.1.27


3. 창조적 참제자의 길

기독교 사역의 길은 단순히 교회안에서의 사역 그리고 교회안으로의 사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 밖에서의 사역 그리고 교회 밖에 머무는 사역도 중요합니다.
세상은 교회에 비해 무한정 넓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상속의 선교의 장은 무한합니다.

그리고 아주 다양합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아주 다양한 색과 모습으로 존재하듯이 말입니다.
사역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창조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단순하고 획일적인 사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동일한 사역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설교는
아름다운 기독교 사역의 다양성을  창출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교회의 거리를 좁혀줍니다.
그리고 세상속의 잃어버린 영혼들로 하여금 기독교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자하는
복음의 추수에 준비되게하고 교회와 말로 하는 설교를 듣고자하는 상태로 이끕니다.
말없이 무언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참 사랑으로 하는 세상슉에서의 선교와 설교는
그래서 기독교 사역의 빈곳을   찾아가고 채우고 다리를 놓는 귀중한 사역입니다.

2018.1.28

4. 평신도들을 위한 참제자도의 모범으로서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몸으로의 설교는 평신도들을 위한  참 제자도의 모범으로서 아주 중요합니다.
만약 기독교가 오직 교회안의 목사와 교회 울타리 안의 선교사들로만 구성된다면 기독교는 기반이 없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것입니다. 평신도들이야말로 시상식에서 이미 벌써 부터 선교하고 몸으로 설교해왔습니다.
그렇게 보면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설교 개념은 새로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이 있다면 목회자들이 안수를 받고난후 세상속으로 재파송될수 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그렇게하면서 평신도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제자로서 뒤를 따르게 한다는 점에서 새롭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학을 공부하고 안수를 받고 어느정도 교회의 사역을 해온 목회자가 결단하고 세상속으로
스스로 재 파송되어 들어가면 일반 평신도와 다른 깊이를 가지고 세상속에서 선교하고 설교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신학적 사상으로 섬김의 사상으로 용서와 사랑의 사상으로 성육신의 사상으로 세상속에서 몸으로 선교하고 몸으로 말없이 혹은 말로서 선교하고 설교하기에 어느 순간 아주 강력한 설득과 감동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됩니다.
세상사람들이 우리의 몸으로의 말없는 섬김과 용서와 인내와 사랑과 긍휼을 보고 복음의 향기를 맡게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향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를 맡고 그들은 질문합니다. 도대체 왜 어디서 이러한 아름다운 향기가 오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목회자의 실천은 아주 강력한 영향을 주고 수많은 평신도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활을
하게됩니다. 세상의 넓고 다양한 영역에서 복음과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도전을 주게됩니다.
마치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서 많은 열매를 맺듯이 말입니다.

2018.1.2

5. 더욱 흥미진진한 선교, 더욱 흥미진진한 설교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설교는 안락하고 평이한 교회 울타리 안에서의 선교와 설교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합니다. 그야말로 들판에서 야수와 투쟁하는 사역입니다. 아무나 할수 없는
야성의 사역입니다. 입으로만 하는 피상적 사역에서 몸으로  침묵으로 무언으로 하는 설교요 선교입니다.
땀과 핏방울을 흘리며 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선교요 설교입니다.
저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전의 입으로 머리속으로 하는 안락한 그러면서도 높은 대우와
보상을 받는 사역을 그리워하지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대답합니다.
아니라고. 전혀 아니라고. 오히려 이러한 광야의 사역, 들판에서의 거친 사역을 하게된 특권에
감사합니다. 스무살안팎에 이미 어린 전도사로 벌써 어연 이십년도넘게 교회안에서 뼈를 갈아
사역해온 사람으로 교회밖에서의 이렇게 흥미진진한 사역을 못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세상속에서의 설교와 세상속에서의 선교는 저에게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을 확 열어주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않아도 높은 대우와 보상없이 하루 하루 불쌍한 버림받은 정죄받는 가난하고
병든 굶주리고 헐벗은 다수도 아닌 작은 숫자의 영혼들을 땀과 문자그대로 핏방울을 흘리며
피곤함과 위험함속에서 섬기며 하는 사역입니다.
고도로 정제된 땀과 피속에서 뽑아내는 설교요 선교입니다. 이렇게 순수한 사역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이십년도 넘게 어린 전도사로 가장 어린 나이에 안수받은 목사로 군목으로 교육목사로 부목사로
담임목사로 사역 해오면서 때로 교회안에서의 사역에 어딘지모르게 회의를 느끼고 모든 사역들이
가시적으로 느껴졌던 경험이 많았습니다. 수도원과 기도원들을 전전하면서 다른 영성의
사역을 추구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전히 교회와 수도원과 기도원의 담벽안
에서의 영성과 사역이었습니다. 지금같은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설교가 주는 하루
하루의 도전과 생생한 사역의 희열을 느껴본적이 없습니다.
교회안에서의 사역의 기회를 잃어버렸거나 못찾은 신학을 공부하고 안수를 받은 동지 사역자들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형제들의 위치는 오히려. 축복의 특권의 바로 전 단계라고 말입니다.
교회밖으로 나아가십시요. 세상속으로 나아가십시요.
세상속에서의 선교 세상속에서의 설교를 하십시요.
더욱더 보람있고 더욱더 순수한 참 예수님의 제자됨을 느낄수 있습니다.
더욱더 흥미진진한 새로운 사역 새로운 섬김의 세상, 신세계를 경험할수.있습니다.
저는 이 진리를 제자신의 피묻은 경험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2018.2.5

6. 여전히 교회안의 사역과 병행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설교를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사역의 귀환점은 교회안에서의 사역입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주의 말씀을 강단에서 선포하는 사역은 한번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로 안수받은 사람들에서는
다시 취소될수 없는 사역입니다. 세상속에서의 사역을 하면서도 교회안에서의 사역을 병행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이 교회안에서 강단의 선포를 하게되면 아주 순수한
정금같은 설교를 하게됩니다. 무언의 설교, 무언의 선교를 해왔기에 언어에 아주 절제된 설교를 하게 됩니다.
때로 교회안에서의 사역에 짓눌려 언어의 홍수속에 빠져서 수많은 언어의 허상으로 설교하는 진실을 잃어버린
설교자들을 보게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수많은 언어를 단순히 쏟아내는 설교자들을
보게됩니다. 세상속에서의 설교와 세상속에서의 선교를 하는 목회자들은 그래서 교회와 세상, 세상과 교회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활을 하게됩니다. 다시 말하면 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두 영역을 오가며 사역해야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 영역에서의 사역도 벅차하지만 이 두 영역을 오가며 하는 사역자들은 그래서 더욱 많이 기도하고
주님의 도우심과 기름부으심과 능력주심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더욱더 정금같은 사역, 정금같은 설교를
하게됩니다.

2018.2.11

7. 세가지 구비조건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설교를 할수 있는 사역을 위해서 적어도 세가지 구비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전문기술을 하나 정도는 신학공부한것 이외에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자격증이나 수료증 혹 필요하면 학교졸업장을 말합니다. 기술학교나 전문대학졸업장도 가능할것입니다.
저는 가장 나이 많은 학생으로 독일에서 간호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제 딸 보다 더 어린 독일학생들과 함께 3년을 같이 공부하고 일했습니다. 삼년의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각자 다른 기술을 선택할수 있습니다. 자신이 신학과 교회외에 현재 가장 관심있는 분야를 발견하십시요. 흥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저는 제가 의학과 간호학에 그렇게 잘 맞는지 전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공부도 힘들지만 재미있게 했습니다. Interdisciplinary! 신학을 공부하고 의학으루공부하여 아프리카의 세상속으로의 선교와 선교를 한 사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Schweitzer! 신약신학자로 신약학분야에서도 저명한 사람이지만 다시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어 저 어둠의 땅, 아프리카라는 거친 세상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바로 슈바이처 박사인것입니다. 슈바이처는 우리의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설교의 좋은 모델이 됩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어려운 신학을 오래 공부해왔기때문에 그 공부의 방법으로하면 다른 분야의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처람 한가지 전문기술, 설교와 선교분야외에 바울의 텐트만드는 기술같은것을 익히는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설교와 선교가 하늘의 기술이라면 텐트제조기술은 땅의 기술입니다. 두가지를 겸비하면 휠씬 자유롭습니다. 하늘과 땅의 두 세계를 오가며 살수있고 사역할수 있습니다.

때로 목회자들이 교회가주는 사례비에 목이매여 비굴하게 혹은 추하게 사는 경우를 보개됩니다.
돈때문에 주님의 일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은 좀도 사례비를 받기위해 당회에서 장로들과 다투는 모습도 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이 초라해지는것을 느낍니다. 내가 이럴려고 소명을 받았나? 이 길밖에 없는가?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드는 사역자들은 아마도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설교의 길로 주님이 되부르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순수해집니다.

둘째는 하나이상의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영어회화에는 능숙할수 있도록 외국어를 늘 공부하십시요.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안수를 받은 사역자라면 이미 영어를 많이 공부했을것입니다. 문법과 독해의 기초가 다져졌기 때문에 화화정복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언어는 습관입니다. 언어는 어려운것이 아닙니다. 반복하여 듣고 반복하여 수없이 말하면 어느새 새 언어가 정복됩니다. 앵무새처럼 따라말하고 따라 흉내내어 반복하다보면 한달이내에 회화도 가능해집니다. 회화의 언어는 가장 기초의 인간언어입니다. 각 나라의 바보촌치들도 말할수 있는것이라면 신학이라는 고차원의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은 쉽게 익힐수 있습니다.

영어회화와 영어가 잘 되는 사람들이 제2 외국어를 익히려고 할때 저의 비결은 영어로 설명하는 제2 외국어자료를 통해 제2 외국어를 익히는 것입니다. 그련 아주 이해가 빨라지고 쉽게 배웁니다. 그리고 영어가 현재 세계공용어이기에 자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영어와 비교언어학적으로
설명하기에 영어를 오래 배운 우리에게 훨씬 빨리 이해가 됩니다.

저는 멕시코에서의 사역을 위해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영어로 된 스페인어 문법, 독해 등등의 책들을 한 열권 독학 했습니다. 그리고 멕시코 사람과 매일 한시간씩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교습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 멕시코사람도 영어를 할수 있어서 저의 스페인어를 영어로 교정해주었습니다. 즐겁게 배웠습니다. 완벽이라함은 하나님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역에 필요한 만큼 최소한 이상의 스페인어를 구사하였습니다. 언어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존재합니다. 언어는 상황의 언어입니다. 일하면서 다시 제한된 필요한 언어를 매일 배웁니다.

저는 다시 독일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에서 이미 독일어를 공부했고 대학에서 다시 이년간 그리고 그후 대학원 입학시험마다 독일어로 제2 외국어 시험을 치렀지만 그후 이십년도 더지나 솔직히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독일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배워야 했습니다. 역시 스페인어를 배운것처럼 같은 출판사의 독일어 교재를 구입해서 재 공부를 했습니다. 영어로 설명하는 독일어 문법과 독해, 아주 속도가 빨랐습니다. 인테넷에 무료로 독일어 공부하는 아주 좋은 자료들이 많습니다. 독일 뉴스를 정상속도와 느린 속도로 듣고 읽을수 있는 자료도 있습니다. 독일의 바보들도 독일어를 잘한다면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다시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인내와 성실의 한국인 특유의 자질을 활용하면 단지 인내의 반복을 통해 독일어나 기타 언어는 정복이 됩니다. 습득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정복은 완전을 말하니까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날마다 독일어를 배웁니다. 텔레비젼을 자막을 늘 틀어놓고 봅니다. 아마존 킨들에 독일어문장과 영어해석문장을 병행한 책을 다운로드해서 늘 틈틈이 읽습니다. 독일에와서 육개월동안 intensive로 독일어를 직업학교에서 하루 다섯시간씩 배웠습니다. 그리고 간호학교에 들어가서 삼년을 독일어로 간호학을 배우고 독일병원에서 독일 간호사들과 함께일해습니다. 첫해는 언어 때문에 아주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이년차, 삼년차 훨씬 나아지고 국가시험도 실기, 이론, 구술시험 모두 한국 학점으로 하면 B학점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법무정신병원에서 현재 이년째 사역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완벽히 독일어를 하지못합니다. 그러나 다시말해 우리는 완벽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한만큼 충분하면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루 하루 독일어를 생활속에서 여전히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습니다. 새 언어를 배우고 말하고 소통하는 즐거움은 그 댓가입니다.

이렇게 영어가 어느정도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수 있고 상대방의 대화를 이해할수 있으면 다른 나라에서의 세상속에서의
직업을 구해볼수 있습니다. 그 나라 말은 아직까지 잘못해도 됩니다. 어느나라에나 영여를 하는 그 나라 사람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그 나라 말을 한국에서 부터 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영어로 다리를 일단 걸어놓고 기본 회화를 익힌후 그 나라에
가서 살면서 생활속에서 필요한 말부터 반복하며 배우면 부지런히 성실히 꾸준히 일하던 한국 목사들은 금새 그 나라말도 잘 배울것입니다. 그것도 재미있게 말입니다.

세째, 외로움을 이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설교를 하는 사역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변두리의 사역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흔히 가지 않는 나만의 길을 걸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고 좁고 좁은 길을 찾아 외롭게 가야하는 사역입니다.
주님이 동행하시기에 어디에서나 언제나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그래서
우리는 이 길을 갑니다.그러나 세상속으로 나만의 고유한 영역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설교하고 선교하는 일에는
외로움이 따릅니다. 그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오래 버틸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설교의 기반을 닦고 뿌리를 내릴때까지 말입니다.

2018. 2.19

8. 함께 고민합시다!

신학을 공부했고 안수르 받은 후 교회안에서의 사역을 할수 없게된 목사님들과 함께 고민해드리겠습니다.
저도 병원사역으로 그리고 설교학 연구소 사역으로 그리고 날마다 피곤하고 기진맥진 하지만
동료 혹 후배 사역자들중에 세상속에서의 사역의 길로 들어서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길을 찾지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면 저에게 연락주십시요. 완벽한 답을 줄수는 없지만 함께 고민하고 함께기도해드릴수 있습니다.

이메일:  richardhcpark@t-online.de

저자신도 고민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근처에 있는 천년도 넘은 독일 수도원 Maeia Laach Kloster 에 자주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 수도원 예배당 정면에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성서말씀이 크게 예수님의 모습과 함께 라틴어로 씌여 있습니다.
길을 잃은 저에게 그 말씅은 마치 생명의 밧줄과도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에게 새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진리라! 참됨! 진실됨! 현실적인 가식적이가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구애되지않는 그러나 나에게 가장 적합한, 나도 모르는 나, 주님만이 아시는 또다른 나!!! 또 다른 가능성의 나!!! 그 참 나의 모습, 나의 진실한 자아에 맞는 새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저는 한번도 간호학이나 의학을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우연히 전에 독일에서 간호학교 학장이었던 한 독일 친구가 간호학교를 가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실천신학교수로 상담학도 오래 공부해왔기때문에 그리고 멕시코에서는 상담학도 가르쳤었기때문에
정신의학병원에서의 간호학 공부는 아주 아주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그후육년정도 지난 지금 병원사역에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제가 그렇게 잘 맞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햇병아리 간호사이지만 벌써 이년간 정식 독일 간호사로 법무병원에서 일해왔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할때 우리는 생명력을 잃게됩니다. 삶의 용기, vitality를 잃고 자꾸 가라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생명"이라!!!! 주님 저에게 생명을 주소서, 생명력을 주소서!!! 그후 지금까지 아주 왕성한 긍정적 기운으로 사역해오고 있습니다.
법무정신병원에서의 하루 여덣시간 독일어로 간호사로 약품과 주사 그리고 모든 간호의 일을 하는것은 하루 하루가 도전입니다.
정신병에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른 환자 범죄자들을 상대허고 돌보는것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기쁘게 사역해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비슷하게 고민하는 목화자들이 있다면 연락주십시요.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2018.2.21

9. 자비량이 아니면 갈수 없는 선교의 자리

세상속에서의 의 선교의 중요성은 자비량이 아니면 갈수없는 선교지를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사역하는 법무정신병원(포렌직 Forensic 짧게 말해) 은 감옥과같은 정신병원입니다. 이곳에도
가끔 개신교와 카톨릭 목회자나 평신도 병원사역자들이 "방문"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주 피상적인 사역입니다.
일 이십분안팎으로  단지 대화를 나누고는 헤어집니다. 그러나 간호사로 하루 여덟시간 환자들과 함께 하는 간호사의
사역은 그들에게 아주 강력한 접근이 됩니다. 자비량 선교사가 아니라면 도저히 들어갈수도 접근할수도 없는 선교의 자리에
세상속에서의 선교사들은 파고들어갈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는 자비량목회라는 새로운 운동을 봅니다.

총신대 합부 대학원 출신의 오재호목사님의 자비량목회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어보십시요. 14년의 부교역자생활을 접고 나음과 이음이라는 디자인회사를 차려 디자인으로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설교를 하는 아주 훌륭한 모델을 발견합니다.

화교 중국동포 이주민목사인 김명철목사님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중국음식분식집 그리고 이제는 중국전통찻집을 운영하며 목회와 선교를 세상속에서 실천하고 한국의 중국인 신학생과 중국인
목회자 양성을 꿈꾸는 사역자입니다.

무지개교회 박성진목사님 이야기. 밤에 배달일을 하고 낮에 사역.

평택의 감리교 권철범 주영숙 부부 목사의 이야기. 떢볶기가게, 학습지교사 그리고 건축업을 병행하는
세상속에서의 선교, 목회의 이야기등은 좋은 국내에서의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사역에 참고할수있는
사례들입니다.

다만 한가지 제가 발견한 사실은 세상속에서의 직업을 다만 주일 교회 사역을 위한 재정적 필요를 위해서만
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세상속에서의 직엄을 통해 우리는 독특한 선교와 설교의 대상에게 파고 들어갈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떢볶기가게를 오직 경재적 목적으로만 하지않고 손님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선교와 간접 설교의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무슨일을 하든 우리 주위에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국내든 국외든.
주님이 우리를 보내시는 특수한 선교의 자리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영혼들을 나의 선교의 대상으로 나의 목회지의 양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안과 교회밖을 양분하고 교회안에서의 사역을 위해 교회밖에서의 사역을 서열상 하위로 생각하는
모델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018.3.2

10. 육체노동의 기쁨

목회자로서 늘 기도와 연구, 설교작성과 심방 등 대부분의 우리의 사역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역입니다.
중세 수도사들이 노동은 기도라고 한것같이, 육체적 노동 또한 신성합니다.
정신노동, 영적 노동만을 하다가 육체적 노동을 하면서 실제로 땀을 흘리고 고난하고 육체적으로 피로할정도로
육체를 통한 노동을 하면서 그리고 하루밤 잠을 깊이 자면서 그 다음날 다시 육체가 쉼을 통해 새 힘을 얻는것을
보면서, 그리고 육체가 그렇게 노동을 통해 하루 하루 새로움을 경험함을 보면서 우리의 정신과 영혼도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사역을 육체적 노동을 겸비하여 함으로서 우리는 육체 노동의 기쁨을 맛봅니다.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삶으로 육체와 정신,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사역에서
히브리적인 사고의 일원론적인 사역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간호사로서 환자들을 날마다 씻기고 수갑을 창살에 채운채 창살을 통해 면도를 해주고(위험하기때문에!) 발에
수갑을 채운채 샤워를 시키고 씻겨주고 식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먹여주고(묶여있기때문에!!! 위험해서) 7개의 특별감시병실에서 7명의 환자들이 수시로 비상종을 누르면 그 병실로 즉각 달려가고 다시 다른 환자가 비상종을 누르면 다른 복도의 맨 끝에 있는 특수감시병실로 달려가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듣고 다시 달려가고, 하루 8시간을 일하면서
거의 8시간 마라톤을 하는 느낌입니다. 마라톤이 아무리 길어도 3시간안팎이지만 병원에서의 사역은 8시간 마라톤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육체의 노동이 피곤은 하지만 즐겁습니다. 육체노동의 기쁨때문입니다.

2018.3.7

11.영지주의적 사고의 틀을 깨라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목회자들의 영지주의적 이원론적 사고를 깨야합니다. 세상은 악하고 더럽고 교회안은 거룩하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물론 세상이 타락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주님의 소유이고 주님께 정복되어 돌려져야 합니다.

교회안으로 피신하고 세상에 대한 제자도의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어떤점에서는 평신도들이 더욱더 목회자들보다 용감한 참 그리스도의 제자로 보입니다. 평신도들은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갈등과 고민에 수없이 날마다 부딪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존적 고민을 합니다. 목회자들은 한때는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신학교와 교회의 아성으로 깊숙히 들어가면서 세상속에서의 제자로서의 감각을 상실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속에서의 고민하는 제자성을 상실한 목회자들이 세상속에서의 제자로서 야성을 가진 평신도들에게 설교하고 충고합니다. 목회자중에 이원론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과 교회를 성과 속으로 분리하소 차별합니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재정적 궁핍을 해결하기위해 구걸을 하면서도 스스로 세상속에서의 노동은 부인하였습니다. 반면 유대교적 랍비들은 반드시 한가지 이상의 직업 기술을 익혔습니다.

세상속에서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야합니다. 평신도들을 세상속으로 재파송해야합니다.
이 일에 목회자들이 함께동참하고 혹 앞장서고 본을 보이며 나를 따르라고 말하는것이 세상속에서의 선교요 설교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2018.3.11

12.참된 기독교 신비주의와 실천

참된 기독교의신비주의는 세상속에서, 세상속의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가장 비성스러운 자리에서
예수님을 발견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마태25)

신을 어디에서 찾고 만나고 경헐할수 있는가?

신비주의의 가장 기본적 질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참된 신비주의는 신을 세상속에서, 그것도 세상속에서 버려진, 가장 가난하고
가장 정죄받고, 가장 소외된 자들, 가장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엄청난 파라독스의 신비주의가 바로 기독교 신비주의인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이 기독교 신비주의의 기초입니다.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훗날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때, 두 그룹으로 사람들을 나누면서.
너는 나를 만났다, 나를 잘 섬겼다, 내가 가난할때 내가 병들었을때 내가 굶주렸을때 내가 버림받고
정죄받고 감옥에 갇혔을때...
묻습니다. 언제 제가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그렇게 섬겼냐고.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세상속에서 네가 그 가장 작은자들 하나에게 한것이 바로 내게 한것이라고.

저에게도 친구들이 묻습니다. 과거 목사요 과거 신학교교수였던 네가 지금 포렌직(법무정신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교회와 신학교를 그리워하지 않느냐고. 그들은 교회와 신학교만이
거룩한 사역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묻는것이지만 그들은 바로 이 기독교
신비주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것입니다. 참된 기독교의 실천적 영성!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사역을 실천하는 사역자들은 바로 이러한 깊은
영성과 참된 신비주의를 그들의 실천을 통하여 경험하게 됩니다.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2018.3.15

13. 엄청난 도전 그러나 엄청난 성장

세상속에서의 선교와 세상속에서의 무언의 설교는 실제로 엄청난 도전입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신학교와 교회안에 잘 정착한 후 다시 세상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실제적인 도움으로 가능하고
주님과 함께 엄청난.일을 할수있습니다.

동료 사역자들중에 많은 달란트를 받고 교회와 신학교의 땅속에 그 재능을.파묻어두고
게으르게 (!) 살아가는 친구들을 봅니다. 혹은 안주하여 안일하게.살악가는 동료 사역자들을 봅니다.
주님이 우리.모두에게 주신 달란트를 우리가 땅에 파묻어 두었지 않았는지
우리는 깊은 성찰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말입니다.

저도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 신학석사, 여러개의 미국 신학대학을 거쳐 다시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과 수사학을 역시.신학분야로 오래 공부해왔기때문에 교회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마치 광야로 나아가는 어린양처럼 두렵고 엄청난 도전 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피눈물나는 진실한 기도를.해야했고 정말 주님의 여전히 신실하신.사랑과 도우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혀 정말로 전혀.생각해보지 않은 세상속에서의 사역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괴로움으로가 아니고 즐거움으로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들도 모르는 우리의 잠재력과 숨겨진 달란트를 잘 알고 계십니다.

저만이.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다른.동역자들도 정지되고.멈추어버린.도전과.성장을 인생 전반을 걸쳐
흥미진진하게 세상속에서의 사역을 통해.해나갈수 있습니다.

고난과  실패가 오히려 위장된 축복이었음을 경험하게.됩니다.

안수를 받고도 교회 사역을 할수없는 당장 보기에는.슬퍼보이는.동료사역자들, 혹 목회사역에 실패하여
더이상 목회사역을 할수없게된 사역자들을 위로하며 권면합니다.
고난과 실패를 통해 세상속으로 나아가십시요.
한동안 주님과 함께 엄청난.도전의.광야의 시간을 보내십시오.
얼마후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실수 있습니다.

내가 몰랐던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실것입니다.

저는 제가 의료부분에 그렇게 적성이 잘.맞는지.결코 전혀 몰랐습니다.
병원사역이.저에게 교회사역못지 않게.잘 맞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일들 버림받고 정죄받은 영혼들을 돌보는 일이 아주 즐겁습니다.
병동의 상사들과 동료들 그리고 환자들로부터 엄청난.긍정적.반응을 받는것에
제.자신이.놀랍니다. 그것도 독일어를 하루.종일.사용하는.이방.땅.독일에서.아직도
완벽하지.못한 독일어로.사역하면서.말입니다.

정말로 아픈.슬픈.영혼들을 정말로 주님의.사랑으로 돌보면서
저 자신이 참으로 큰 보람을 날마다 느낍니다.
물론 여전히.하루.하루의.8시간이상의.병원사역이.도전이지만.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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